정보통신기술(ICT)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적과 동침’이 늘고 있다. 으르렁대며 서로 헐뜯던 기업끼리 상호 간 제품 탑재를 주고받거나, 살얼음판을 걷는 국가 간 분쟁 속에서도 우정의 꽃을 피우는 사례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의 판이 뒤집히고 있기 때문인데, 앞으로 5세대(G)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분야가 발전할수록 산업 간 경계는 더욱 희미해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은 기술 간 융합을 전제로 한다”며 “국내 기업이 막대한 자금력과 시장을 지배하는 대규모 인력과 빅데이터를 가진 외국계 공룡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오월동주는 손자병법(孫子兵法)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말로, 서로 적대시한 오나라·월나라 사람도 한 배를 타고 강풍을 만나면 위기 탈출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쳤을 것이란 가설을 담고 있다.
◇TV 전쟁 삼성 vs LG…스마트폰 부문에선 동맹 = 올해 국내 가전업계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간 TV 논쟁이 한 획을 그었다. 양사는 자사가 내세운 기술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글로벌 소비자를 상대로 ‘왜 사람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보다 퀀텀닷발광다이오드(QLED) TV를 고를까’란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OLED TV 자체 발광에 대해 “광원인 백색 OLED만 자체 발광한다”며 “스스로 색을 내는 것은 아니다. (OLED TV도) 컬러 필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LG전자가 ‘QLED TV는 자체 발광하지 않고 컬러 필터가 필요하다’고 공격했던 논리를 역이용했다. LG전자도 삼성 QLED TV에 대한 공세를 외국으로 확대했다. LG전자 미국법인은 최근 자사 OLED TV의 장점을 내세우며 QLED 제품이 ‘유사 LED’ 제품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광고를 공개했다. LG전자는 ‘LED’ 앞에 붙는 특정 알파벳 제품들은 OLED의 성능을 따라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첨단 기술이 적용된 것은 오리지널 OLED인 LG OLED 디스플레이와 TV들뿐”이라며 “왜 다른 것(QLED)에 안주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TV 품질로 상호비방에 가까운 논쟁을 벌이는 양사지만, 스마트폰 부문에서만큼은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LG전자는 올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 V50S 씽큐에 삼성전자 이미지센서를 탑재했다. LG전자에 따르면, V50S 씽큐의 전면 카메라에 삼성전자가 개발한 3200만 화소 이미지센서 ‘아이소셀 브라이트 GD1’을 탑재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작에 썼던 일본산 부품 대신 삼성의 이미지센서를 쓰게 됐다”며 “우수한 부품이라면 공급업체가 어느 곳이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야심작 갤럭시노트10에 삼성SDI와 함께 LG화학 배터리를 채택했다. 삼성전자는 그간 관계사인 삼성SDI 등을 통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배터리를 공급받아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TV 문제는 TV로 끝나야 한다”며 “가전업계 논쟁은 매번 있었던 일로 서로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일 무역전쟁도 막지 못한 수출·협력 쾌거 = 최근 외신에는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의 새 게임콘솔 ‘플레이스테이션5’에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를 공급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SSD는 기존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와 달리, 자기디스크가 아닌 반도체를 이용해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SSD는 HDD보다 빠른 속도로 데이터의 읽기나 쓰기가 가능하며,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없어 작동 소음이 없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 10월, 일본의 2위 이동통신사 KDDI에 향후 5년간 2조4000억 원 규모의 5G 장비 공급계약 소식을 전했다. KDDI의 5G 설비 투자액(5조2000억 원) 중 절반가량이 삼성전자 장비 구매에 들어가는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일본 5G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한·일 무역전쟁도 양국 간 기술 교류를 막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업체인 네이버 자회사 라인과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야후재팬은 AI 기반의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양사는 미국의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와 중국의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에 맞서 검색, 메신저, 전자상거래 등에 이르는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용자 1억 명 규모의 거대 디지털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AI 기술이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13조 달러(약 1경5300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AI 기술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그간 일본에서 모바일 간편결제 시장 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맞수였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원문보기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2030103262132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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